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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탐방]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 - 글·신희연
출처
날짜
2005년 2월 20일 일요일
조회수: 7636
|탐|방|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


뉴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양지 톨게이트를 빠져 이천 방향으로 달려가니 국도 한 곁에 순교자 기념관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표지판을 따라 소로로 접어 들어 5백 미터 가량 오르니 순교자 기념 공원 입구가 나왔고 큰 바위 위에 새겨진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니라'는 글귀가 순례자를 반겼다.
본관까지 올라가는 길목 양쪽에는 개교회에서 기증한 성경돌비와 50 cm 높이의 자연석으로 된 '순교자 기념비'들이 줄이어 있었다. 유족들이 세운 이 비석엔 순교자의 이름들과 주옥같은 성구들이 적혀 있었다. 이 비석들을 보니 로마 당시 카타콤에서 생을 마감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났다. 기념관에 도착하니 입구에 큰 돌판에 주기철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인 <옥중 명상>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주님을 위하여/이제 당하는 수옥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의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했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뉴스

입구에 새겨진 이 글을 읽는 동안 저절로 옷깃을 여미는 숙연함과 감동 속에 기념관 안으로 들어섰다.
1983년 20개 교단들이 모여 결성한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한국 성서공회, 기독교역사, 기독출판협회 등의 협찬으로 설립된 순교자 기념관은 뜻 있는 성도들의 헌금이 이어져 완공할 수 있었으며, 1989년 준공기념 예배를 드리면서 문을 열게 되었다. 1999년에는 기독교 문화유산 관광코스로 선정되었고 해마다 수만 명씩 다녀가는 기독교의 성지로 자리잡고 있다.

뉴스기념관은 건평 360평의 3층 건물로 전체 직사각형에 가운데 원통형 모양을 넣어 유선을 강조했다. 출입구에 들어서니 로비의 대형 그림이 시선을 압도하였다. 성경 앞에 무릎을 꿇고 참수 직전에 있는 토머스 목사를 묘사한 장면이었다. 혜초 김학수 화백이 기증한 40점의 역사화들 중 하나였다.
그림 옆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서 관람이 시작되었는데 2층은 우측 회의실과 좌측 예배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예배실에는 30년대 이전 개화기 교회들과 우리 사회 모습을 담은 사진 1백 20여 점이 걸려 있었다. 초가 교회 앞에 색동 저고리를 입은 아이들의 사진, 어린 동생을 포대기로 업고 주일학교로 줄지어 가고 있는 어린이들, 낯선 땅에 와서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한 파란 눈의 선교사 자녀들, 사진 속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개화기 성도들의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3층엔 순교자들의 선영들과 성경, 편지 등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제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목숨을 바쳐 종교 탄압에 굴하지 않았던 2백 2명의 순교자들이 사용하였던 것이었다. 순교자들 가운데는 선교사 및 목회자, 장로, 집사뿐 아니라 어린이들까지 있었다.
선영과 유리 탁자 속에 보관된 손때 묻은 유품들을 보니 현실에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던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뜨거운 신앙이 전달되어 오는 듯 하였다.

글·신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