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의 소식
제목
[탐방] 한국 기독교 역사 박물관 -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복음의 흔적을 찾아서
출처
날짜
2005년 9월 5일 월요일
조회수: 4938
풍요로운 특산물과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도시, 경기도 이천 ....그곳에서한국 기독교 문화의 향기를 전하고 있는 곳.
며칠 동안 계속되던 장마가 오늘만큼은 화창한 햇살을 비추고 있었다. 화창한 햇살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의 찬양을 드리며, 서울을 출발하여 영동 고속도로를 따라 2시간 가량 달린 후, 시골의 아늑함과 소박함이 전해지는 한 박물관을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초지리에 3층 건물로 이루어진 한국 기독교 역사 박물관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 기독교 신앙과 역사의 향을 찾아 오늘날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설립되었다. 대구의 어느 작은 책방에서 시작되어 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알차게 종합적 문화선교의 새로운 장을 목표로 2001년 11월 30일 개관한 조그마한 박물관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국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새벽을 깨우던 사랑의 종이 아직도 청아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종소리는 당시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분주히 아침을 준비하던 선인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게 하였다. 정면에는 말구유가 아름답게 장식되어져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본분을 잃고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인류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누추한 곳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던 것이다.그 사랑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박물관의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복음이 처음 들어 온 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작되어지는 1층 전시실에는 새벽예배가 처음 시작되었다는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으로 북한에 과거에 존재했던 많은 교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고문과 박해가 그림과 글로 새겨진 책을 바라보며 선인들의 순교 정신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전시실의 모퉁이를 돌아가면 'ㄱ자 예배당 주일예배'모습을 재현한 모형이 있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유교의 봉건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인들이 좌석을 남녀로 구분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 당시(1890년대)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유달리 남녀유별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이러한 풍속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녀를 구별하여 전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를 ㄱ자 모양으로 지어 모서리에 강단을 설치하고 휘장을 쳐서 한편에는 여자석, 다른 한편에는 남자석을 따로 만들어 한 설교자의 설교를 듣게 했으며 출입문도 따로 만들어 남녀의 출입을 구별하였다고 한다.
해방 전에 출판된 기독교 고문헌을 비롯하여 한국 교회사, 한국 종교, 한국 민족운동, 향토지, 기독교 및 일반 정기 간행물 등 도서 자료와 교회사 관련 사진과 화보 자료, 교회 주보와 요람, 목회자 설교 노트와 일기, 작고한 목회자들의 유품, 기타 박물 자료들을 통해 이 땅에서 이어지던 기독교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1층 전시실을 나와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지하와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서도 많은 전시품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1920년대 제작된 "말세도"라는 채색 그림으로 일제시대 부흥회 때 교육용 휘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예수 재림과 마지막 때의 심판 과정을 그림으로 정리한 것인데, "공중재림", "혼인잔치", "7년대환난", "천년왕국" 등이 잘 설명되어져 있었다. 이는 일제시대를 살았던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중에, "묵시록"이라는 그림이 계속 떠올랐다. '반드시 속히 오심 아멘' 강한 필력으로 새겨진 그 그림에서 일제시대를 살았던 선인들의 강한 믿음과 그 시대를 살며 주님이 다시 오심을 사모함으로 기다리는 그들의 마음이 잔잔한 감동과 함께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선인들의 가르침으로 새겨졌다.
글 오유미
경희대학교 주거환경학과 4학년 재학 중
사진 이동희
며칠 동안 계속되던 장마가 오늘만큼은 화창한 햇살을 비추고 있었다. 화창한 햇살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의 찬양을 드리며, 서울을 출발하여 영동 고속도로를 따라 2시간 가량 달린 후, 시골의 아늑함과 소박함이 전해지는 한 박물관을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초지리에 3층 건물로 이루어진 한국 기독교 역사 박물관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 기독교 신앙과 역사의 향을 찾아 오늘날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설립되었다. 대구의 어느 작은 책방에서 시작되어 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알차게 종합적 문화선교의 새로운 장을 목표로 2001년 11월 30일 개관한 조그마한 박물관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국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새벽을 깨우던 사랑의 종이 아직도 청아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종소리는 당시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분주히 아침을 준비하던 선인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게 하였다. 정면에는 말구유가 아름답게 장식되어져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본분을 잃고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인류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누추한 곳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던 것이다.그 사랑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박물관의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복음이 처음 들어 온 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작되어지는 1층 전시실에는 새벽예배가 처음 시작되었다는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으로 북한에 과거에 존재했던 많은 교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고문과 박해가 그림과 글로 새겨진 책을 바라보며 선인들의 순교 정신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전시실의 모퉁이를 돌아가면 'ㄱ자 예배당 주일예배'모습을 재현한 모형이 있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유교의 봉건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인들이 좌석을 남녀로 구분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 당시(1890년대)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유달리 남녀유별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이러한 풍속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녀를 구별하여 전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를 ㄱ자 모양으로 지어 모서리에 강단을 설치하고 휘장을 쳐서 한편에는 여자석, 다른 한편에는 남자석을 따로 만들어 한 설교자의 설교를 듣게 했으며 출입문도 따로 만들어 남녀의 출입을 구별하였다고 한다.
해방 전에 출판된 기독교 고문헌을 비롯하여 한국 교회사, 한국 종교, 한국 민족운동, 향토지, 기독교 및 일반 정기 간행물 등 도서 자료와 교회사 관련 사진과 화보 자료, 교회 주보와 요람, 목회자 설교 노트와 일기, 작고한 목회자들의 유품, 기타 박물 자료들을 통해 이 땅에서 이어지던 기독교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1층 전시실을 나와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지하와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서도 많은 전시품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1920년대 제작된 "말세도"라는 채색 그림으로 일제시대 부흥회 때 교육용 휘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예수 재림과 마지막 때의 심판 과정을 그림으로 정리한 것인데, "공중재림", "혼인잔치", "7년대환난", "천년왕국" 등이 잘 설명되어져 있었다. 이는 일제시대를 살았던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중에, "묵시록"이라는 그림이 계속 떠올랐다. '반드시 속히 오심 아멘' 강한 필력으로 새겨진 그 그림에서 일제시대를 살았던 선인들의 강한 믿음과 그 시대를 살며 주님이 다시 오심을 사모함으로 기다리는 그들의 마음이 잔잔한 감동과 함께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선인들의 가르침으로 새겨졌다.
글 오유미
경희대학교 주거환경학과 4학년 재학 중
사진 이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