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밭을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좋은 땅으로 나누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길가밭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밟고 다녀서 단단하게 굳은 땅을 말합니다. 실상은 밭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씨를 뿌린다 해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길가밭이란, 아무리 능력 있는 복음을 증거하며 믿으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기 고집과 아집, 자존심 등으로 꽉 찬 단단한 밭이기에 말씀의 씨를 뿌려도 심기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자기 생각과 틀을 고집함으로 권능을 베푸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길가밭 같은 사람은 강퍅하여 권능을 보여 주어도 마음 문을 열지 않고 복음을 배척합니다. 이렇게 마음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은 말씀이 떨어져도 결실치 못하니 결국 구원받지 못합니다.
둘째로, 돌밭은 겉에는 흙이 있으나 속에 돌이 많은 밭입니다. 이런 밭에 씨를 뿌리면 싹이 나온다 해도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하기에 금방 말라 버립니다.
돌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만 믿음으로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4:17에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 십일조를 하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섬기라" 등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려움이 오면 믿음을 지키지 못하지요. 말씀을 들어서 알기는 하지만 마음에 확실한 믿음으로 와 닿지 않으니 행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가 있어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기운을 막으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에 대하여 마가복음 4:19에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말씀합니다.
이런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은데도 시험 환난이 따르고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세상 근심과 걱정, 재리의 유혹, 정욕에 넘어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이 부도나서 어려울 때 사단이 생각을 통해 '조금만 편법을 쓰면 빚을 다 갚을 수 있는데…' 하고 유혹하면 넘어가고 맙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도를 좇아야 하나님이 도와주실 수 있는데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가시떨기가 막 싹이 났을 때에는 별로 큰 해가 없는 듯 보이지만 자란 후에는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커다란 넝쿨을 이루어 좋은 씨가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시떨기같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아무리 작은 것처럼 보여도 처음부터 뽑아 버려야 합니다.
넷째로, 좋은 땅은 옥토이며 농부가 정성껏 기경하고 가꾼 기름진 땅입니다. 단단한 흙을 갈아엎고 돌멩이를 주워내며 가시떨기를 뽑아낸 땅이지요. 바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린 마음밭입니다.
옥토를 이룬 만큼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쉽습니다. 시기하고 판단하던 마음이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교만한 마음이 겸손한 마음으로 바뀌지요. 이렇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마음에 할례하는 것이 바로 마음밭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좋은 밭에 씨를 뿌리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풍성하게 소출을 거둡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옥토의 마음에 말씀의 씨앗이 떨어지면 싹이 나고 쑥쑥 자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빛의 열매 등 영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힙니다. 또한 옥토가 되면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 믿음이 오며,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는 불같은 기도를 하므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마가복음 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