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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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8
제29과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4~28
읽을말씀 : 마 15:24~28 | 외울말씀 : 롬 1:17 ㅣ 참고 말씀:삼상 21장, 왕하 25장
교육목표 : 자존심이 없는 의롭고 겸비한 마음이 되어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자존심이란 ‘자기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섬기며 사랑하기를 원하시지요. 그런데 자존심을 내세우다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자존심을 버리고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였기에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 자존심을 버림으로 생명을 건진 다윗
다윗은 블레셋 최고의 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 백전백승하였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 그런데 이를 시기한 사울 왕은 군사를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다윗이 얼마나 두렵고 절박했던지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21장).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국이며 ‘가드’라는 성읍은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아기스 왕의 신하들은 자기 나라 최고의 전사를 죽이고 병사들을 수없이 죽인 다윗을 당장에 처치하라고 하지요.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척하여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윗의 이런 행동을 보고 아기스 왕은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 이 자를 데려왔느냐?” 하며 쫓아내 버리지요.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윗은 자존심을 버림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왕이 되어 블레셋을 완전히 굴복시켜 조공을 바치게 했고, 견고한 통일왕국을 이룩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윗과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행동하였겠습니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죽을망정 그렇게는 못하겠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존심을 버리고 생명을 건져 훗날을 기약했습니다. 이를 통해 과연 자존심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정녕 옳은 것인지 잘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자존심을 내세우다 비참하게 죽은 시드기야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어떠했습니까? 바벨론의 피지배국이었던 유다는 두 차례에 걸쳐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똑똑한 귀인들은 다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평범하고 힘없는 백성들만 유다에 남았습니다. 이때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소환을 당해 국정을 보고하고 조공을 바치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이 애굽 왕 바로와 비밀리에 동맹관계를 맺고 내통하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기에 이르고야 말지요.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지만 시드기야 왕은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선지자를 감옥에 가둬 버립니다. 아무 힘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세 번째 침략을 당하고 말지요.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에 무려 1년 7개월간 포위되어 성 안의 보급 물자들이 완전히 끊기고, 식량도 떨어져 사람들은 굶어 죽어갔습니다. 게다가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뚫고 들어와 시드기야와 군사들은 한밤중에 도망치다 결국 붙잡히고 맙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배반한 시드기야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아 버리지요.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자존심을 내세움으로 자신뿐 아니라, 나라가 망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인지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3. 겸비한 마음으로 응답받은 수로보니게 여인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지방에 가셨을 때입니다(마 15:21~28).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을 둔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였지요. 여인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큰소리로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즉 한 말씀도 하시지 않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었지요. 여인이 계속하여 소리 지르자 오히려 제자들이 나서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말씀드릴 정도였지요. 그제야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공손히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을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며 이방 여인을 개에 비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개 취급당했다고 자존심이 상해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서운함이나 자존심이 상한다는 마음 자체가 없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비한 마음으로 끝까지 예수님께 구하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딸이 그때로부터 깨끗이 나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를 철저히 낮춤으로 믿음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았던 것입니다.
4. 의로운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한 것은, 오로지 딸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억지로 분을 누르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산하여 한 말이 아닙니다. 여인의 중심이 의롭고 겸비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을 때도 선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지요. 순간에 지혜를 짜내 “내가 이렇게 대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사야겠다.” 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선과 겸손이 그대로 나왔을 뿐이지요.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교만을 버리며, 마음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육의 마음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마음,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요. 그러면 어떤 문제든 응답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중심이 겸비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하여 응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중심이 되면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해도 믿음의 행함이 나오게 되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게 됩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고 그 신뢰에 변함이 없으며 또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고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과 말씀을 하셔도 요지부동하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믿어 드렸습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니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서운해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그 말씀에 겸손히 긍정의 고백을 했지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말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롭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이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의 부와 명예, 권세 등을 얻기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원한 생명과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존심을 철저히 버리고 낮아지며 겸비한 자가 되어 수고하며 인내해야 하지요. 높아지고 섬김 받고자 하는 마음,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판단 정죄하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 등을 온전히 버려야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마음껏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윗을 시기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다윗이 도망간 나라는 어디일까요? ( )
2. 다윗은 자존심을 버리고 블레셋 왕에게 가서 어떠한 행동을 하였나요?
( )
3. 나는 누구일까요? ( )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는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다 멸망당했습니다.”
4.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개 취급하였을 때 여인은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예수님께 나아왔나요?
( )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25~13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수로보니게’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이르는 말이다. 수로보니게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수리아의 베니게란 뜻이다(막 7:26). 마태복음 15장 22절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가나안 여자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가나안이 베니게의 옛 이름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교육목표 : 자존심이 없는 의롭고 겸비한 마음이 되어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자존심이란 ‘자기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섬기며 사랑하기를 원하시지요. 그런데 자존심을 내세우다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자존심을 버리고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였기에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 자존심을 버림으로 생명을 건진 다윗
다윗은 블레셋 최고의 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 백전백승하였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 그런데 이를 시기한 사울 왕은 군사를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다윗이 얼마나 두렵고 절박했던지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21장).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국이며 ‘가드’라는 성읍은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아기스 왕의 신하들은 자기 나라 최고의 전사를 죽이고 병사들을 수없이 죽인 다윗을 당장에 처치하라고 하지요.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척하여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윗의 이런 행동을 보고 아기스 왕은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 이 자를 데려왔느냐?” 하며 쫓아내 버리지요.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윗은 자존심을 버림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왕이 되어 블레셋을 완전히 굴복시켜 조공을 바치게 했고, 견고한 통일왕국을 이룩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윗과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행동하였겠습니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죽을망정 그렇게는 못하겠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존심을 버리고 생명을 건져 훗날을 기약했습니다. 이를 통해 과연 자존심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정녕 옳은 것인지 잘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자존심을 내세우다 비참하게 죽은 시드기야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어떠했습니까? 바벨론의 피지배국이었던 유다는 두 차례에 걸쳐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똑똑한 귀인들은 다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평범하고 힘없는 백성들만 유다에 남았습니다. 이때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소환을 당해 국정을 보고하고 조공을 바치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이 애굽 왕 바로와 비밀리에 동맹관계를 맺고 내통하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기에 이르고야 말지요.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지만 시드기야 왕은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선지자를 감옥에 가둬 버립니다. 아무 힘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세 번째 침략을 당하고 말지요.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에 무려 1년 7개월간 포위되어 성 안의 보급 물자들이 완전히 끊기고, 식량도 떨어져 사람들은 굶어 죽어갔습니다. 게다가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뚫고 들어와 시드기야와 군사들은 한밤중에 도망치다 결국 붙잡히고 맙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배반한 시드기야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아 버리지요.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자존심을 내세움으로 자신뿐 아니라, 나라가 망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인지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3. 겸비한 마음으로 응답받은 수로보니게 여인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지방에 가셨을 때입니다(마 15:21~28).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을 둔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였지요. 여인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큰소리로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즉 한 말씀도 하시지 않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었지요. 여인이 계속하여 소리 지르자 오히려 제자들이 나서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말씀드릴 정도였지요. 그제야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공손히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을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며 이방 여인을 개에 비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개 취급당했다고 자존심이 상해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서운함이나 자존심이 상한다는 마음 자체가 없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비한 마음으로 끝까지 예수님께 구하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딸이 그때로부터 깨끗이 나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를 철저히 낮춤으로 믿음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았던 것입니다.
4. 의로운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한 것은, 오로지 딸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억지로 분을 누르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산하여 한 말이 아닙니다. 여인의 중심이 의롭고 겸비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을 때도 선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지요. 순간에 지혜를 짜내 “내가 이렇게 대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사야겠다.” 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선과 겸손이 그대로 나왔을 뿐이지요.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교만을 버리며, 마음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육의 마음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마음,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요. 그러면 어떤 문제든 응답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중심이 겸비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하여 응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중심이 되면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해도 믿음의 행함이 나오게 되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게 됩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고 그 신뢰에 변함이 없으며 또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고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과 말씀을 하셔도 요지부동하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믿어 드렸습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니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서운해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그 말씀에 겸손히 긍정의 고백을 했지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말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롭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이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의 부와 명예, 권세 등을 얻기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원한 생명과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존심을 철저히 버리고 낮아지며 겸비한 자가 되어 수고하며 인내해야 하지요. 높아지고 섬김 받고자 하는 마음,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판단 정죄하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 등을 온전히 버려야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마음껏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윗을 시기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다윗이 도망간 나라는 어디일까요? ( )
2. 다윗은 자존심을 버리고 블레셋 왕에게 가서 어떠한 행동을 하였나요?
( )
3. 나는 누구일까요? ( )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는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다 멸망당했습니다.”
4.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개 취급하였을 때 여인은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예수님께 나아왔나요?
( )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25~13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수로보니게’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이르는 말이다. 수로보니게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수리아의 베니게란 뜻이다(막 7:26). 마태복음 15장 22절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가나안 여자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가나안이 베니게의 옛 이름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4-07-11
제28과일천 번제의 정성
왕상 3:4~12
읽을말씀 : 왕상 3:4~12 | 외울말씀 : 고후 9:7 ㅣ 참고 말씀: 말 1:6~9
교육목표 : 솔로몬 왕처럼 하나님께 지극한 정성을 내보임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고 축복이 넘쳐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정성을 다한다면 뜻을 이루게 됨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전무후무한 지혜는 물론 부와 영광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어떠한 정성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이러한 축복을 받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일천 번제를 지극 정성으로 드린 솔로몬
솔로몬은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아버지 다윗 왕이 정치, 경제, 군사 등 전반적으로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안정 속에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솔로몬은 나단 선지자의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기에 힘썼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무엇보다 먼저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물로 가져온 짐승을 하나하나 각을 떠서 불태워 그 향기로 드리는 제사법으로 많은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지요. 이는 가장 보편적인 제사법으로서 생명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례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 온전한 희생과 헌신, 자발적인 봉사를 상징하는 번제를 일천 번이나 드렸습니다.
우리도 예배드릴 때에 솔로몬 왕처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혹여 기쁨이 없이 피곤함으로, 졸음과 잡념 속에서 드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예물을 드릴 때에도 얼마나 정성껏, 믿음으로, 사랑으로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말씀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궤에 헌금하는 것을 보고 칭찬하셨습니다(막 12장). 두 렙돈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동전 두 닢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중심을 보시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담아 즐거이 드릴 때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솔로몬의 정성 다한 일천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재판할 때에 선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사사로이 명예나 부를 구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시며,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총명은 물론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도 겸하여 주셨습니다(왕상 3:13).
2. 정성된 마음으로 행했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된 마음을 흠향하십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완벽하다 해도 마음이 깃들지 않으면 받지 않으시지요. 가령,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이나 부모, 형제, 이웃, 동료 어느 누구를 섬길 때도 마음 다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므로 정성된 마음으로 했는지 다 아시지요.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솔로몬의 중심과 마음씀씀이를 아셨기에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어떠한 정성으로 성전을 건축했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왕으로 즉위한 지 4년 만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완공하기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아름답고 정교하게 건축하였습니다. 돌을 뜨는 곳에서 아예 규격에 맞게 다듬어 가져오게 하여 성전에서 망치나 철 연장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게 했습니다. 성전 내부는 백향목 널판으로 벽에 입힌 후 정금으로 덧입혀 돌이 보이지 않게 하였고, 사면 벽에는 그룹들과 종려와 꽃 핀 형상을 정교하게 아로새겼습니다.
성전 앞에는 기둥 둘을 웅장하게 만들었는데 사슬로 기둥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달았습니다. 또 성전의 기구들, 즉 등대와 꽃, 등잔과 화 젓가락, 그리고 불집게와 주발, 숟가락과 불 옮기는 그릇 같은 것들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지극 정성으로 성전은 아름답고도 정교하며 웅장하게 건축되었지요.
우리가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헌물을 드리거나 무엇을 하든지 정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축복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어떠한 마음으로 구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바로 솔로몬이 자신의 부귀영화나 장수를 구하지 않고,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구한 것처럼 구하시면 됩니다. 즉 자기 유익이 아닌 상대의 유익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영혼들을 위해 구하면 기뻐하시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풍족하게 채워 주십니다.
수넴의 귀부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지방을 지날 때면 음식을 대접하고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여인의 섬김에 감동한 엘리사가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아들이 없음을 알고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갖게 될 것을 말해 줍니다. 정성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니 구하지 않은 축복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자기보다 백성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것처럼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진리 곧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3. 하나님 앞에 감동적인 정성을 보인 사람들
성경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갈 때 많은 금은과 귀한 의복을 정성껏 준비하여 갔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받지 않았지만 나아만은 그만한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길손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마치 주를 섬기듯 대접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고대하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축복의 예언을 또다시 듣지요. 야곱은 자기를 미워하는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형의 감정을 풀고자 했지요.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여 화해할 수 있었지만 야곱의 정성 역시 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이 자원하여 너도 나도 즐거이 예물을 드렸는데 어찌나 많이 드렸던지 그만 가져오도록 공포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백성의 정성이 그처럼 지극했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정성과 사모함은 어떻습니까?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자 자신의 체면이나 지위 따위는 생각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지요(눅 19장). 그의 사모함을 아신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십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감격에 찬 삭개오는 예수님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하지요.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시며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며 지극한 정성과 사모함을 보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신약 시대 안나 선지자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였을 때 눈물로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또 그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지킴으로써 더 많은 자녀를 얻었습니다. 엘리사는 끝까지 스승 엘리야를 붙좇는 정성을 보임으로 스승의 갑절의 영감을 받았지요.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하나님 앞에 감동적인 정성과 헌신을 내보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솔로몬 왕이 일천 번제를 지극 정성으로 드리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했습니다. 이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을까요?
( )
2.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한 것 외에도 무엇을 주셨을까요?
( )
3. 나아만 장군은 치료받기 위해 어떤 정성을 내보였을까요?
( )
4.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어떠한 행함을 내보였을까요?
( )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13~12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제물로 가져온 짐승의 각을 떠서 불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법이다. 이는 구약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제사법으로서,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의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며 결국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 산 제사로 드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등 절기 예배를 포함하여 우리가 드리는 모든 주일 예배가 이에 해당한다.
교육목표 : 솔로몬 왕처럼 하나님께 지극한 정성을 내보임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고 축복이 넘쳐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정성을 다한다면 뜻을 이루게 됨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전무후무한 지혜는 물론 부와 영광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어떠한 정성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이러한 축복을 받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일천 번제를 지극 정성으로 드린 솔로몬
솔로몬은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아버지 다윗 왕이 정치, 경제, 군사 등 전반적으로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안정 속에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솔로몬은 나단 선지자의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기에 힘썼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무엇보다 먼저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물로 가져온 짐승을 하나하나 각을 떠서 불태워 그 향기로 드리는 제사법으로 많은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지요. 이는 가장 보편적인 제사법으로서 생명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례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 온전한 희생과 헌신, 자발적인 봉사를 상징하는 번제를 일천 번이나 드렸습니다.
우리도 예배드릴 때에 솔로몬 왕처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혹여 기쁨이 없이 피곤함으로, 졸음과 잡념 속에서 드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예물을 드릴 때에도 얼마나 정성껏, 믿음으로, 사랑으로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말씀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궤에 헌금하는 것을 보고 칭찬하셨습니다(막 12장). 두 렙돈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동전 두 닢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중심을 보시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담아 즐거이 드릴 때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솔로몬의 정성 다한 일천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재판할 때에 선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사사로이 명예나 부를 구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시며,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총명은 물론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도 겸하여 주셨습니다(왕상 3:13).
2. 정성된 마음으로 행했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된 마음을 흠향하십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완벽하다 해도 마음이 깃들지 않으면 받지 않으시지요. 가령,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이나 부모, 형제, 이웃, 동료 어느 누구를 섬길 때도 마음 다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므로 정성된 마음으로 했는지 다 아시지요.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솔로몬의 중심과 마음씀씀이를 아셨기에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어떠한 정성으로 성전을 건축했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왕으로 즉위한 지 4년 만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완공하기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아름답고 정교하게 건축하였습니다. 돌을 뜨는 곳에서 아예 규격에 맞게 다듬어 가져오게 하여 성전에서 망치나 철 연장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게 했습니다. 성전 내부는 백향목 널판으로 벽에 입힌 후 정금으로 덧입혀 돌이 보이지 않게 하였고, 사면 벽에는 그룹들과 종려와 꽃 핀 형상을 정교하게 아로새겼습니다.
성전 앞에는 기둥 둘을 웅장하게 만들었는데 사슬로 기둥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달았습니다. 또 성전의 기구들, 즉 등대와 꽃, 등잔과 화 젓가락, 그리고 불집게와 주발, 숟가락과 불 옮기는 그릇 같은 것들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지극 정성으로 성전은 아름답고도 정교하며 웅장하게 건축되었지요.
우리가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헌물을 드리거나 무엇을 하든지 정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축복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어떠한 마음으로 구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바로 솔로몬이 자신의 부귀영화나 장수를 구하지 않고,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구한 것처럼 구하시면 됩니다. 즉 자기 유익이 아닌 상대의 유익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영혼들을 위해 구하면 기뻐하시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풍족하게 채워 주십니다.
수넴의 귀부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지방을 지날 때면 음식을 대접하고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여인의 섬김에 감동한 엘리사가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아들이 없음을 알고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갖게 될 것을 말해 줍니다. 정성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니 구하지 않은 축복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자기보다 백성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것처럼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진리 곧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3. 하나님 앞에 감동적인 정성을 보인 사람들
성경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갈 때 많은 금은과 귀한 의복을 정성껏 준비하여 갔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받지 않았지만 나아만은 그만한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길손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마치 주를 섬기듯 대접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고대하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축복의 예언을 또다시 듣지요. 야곱은 자기를 미워하는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형의 감정을 풀고자 했지요.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여 화해할 수 있었지만 야곱의 정성 역시 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이 자원하여 너도 나도 즐거이 예물을 드렸는데 어찌나 많이 드렸던지 그만 가져오도록 공포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백성의 정성이 그처럼 지극했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정성과 사모함은 어떻습니까?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자 자신의 체면이나 지위 따위는 생각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지요(눅 19장). 그의 사모함을 아신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십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감격에 찬 삭개오는 예수님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하지요.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시며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며 지극한 정성과 사모함을 보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신약 시대 안나 선지자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였을 때 눈물로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또 그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지킴으로써 더 많은 자녀를 얻었습니다. 엘리사는 끝까지 스승 엘리야를 붙좇는 정성을 보임으로 스승의 갑절의 영감을 받았지요.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하나님 앞에 감동적인 정성과 헌신을 내보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솔로몬 왕이 일천 번제를 지극 정성으로 드리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했습니다. 이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을까요?
( )
2.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한 것 외에도 무엇을 주셨을까요?
( )
3. 나아만 장군은 치료받기 위해 어떤 정성을 내보였을까요?
( )
4.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어떠한 행함을 내보였을까요?
( )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13~12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제물로 가져온 짐승의 각을 떠서 불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법이다. 이는 구약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제사법으로서,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의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며 결국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 산 제사로 드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등 절기 예배를 포함하여 우리가 드리는 모든 주일 예배가 이에 해당한다.
2014-07-04
제27과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8
읽을말씀 : 출 23:14~18 | 외울말씀 : 출 23:16 ㅣ 참고 말씀:신 16:9~12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麥秋節)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지요.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밀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됩니다. 맥추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지요.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출 34:22).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은 7주가 지난 다음 날이 50일째가 되므로 붙여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 역사가 나타났으므로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으며, 후반기 첫 주일에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에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또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특별히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레 23:17) 드렸습니다. 이와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렸지요.
여기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심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어서 드림: 민 28:5~6)와 전제(제사 방법 중 하나로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붓는 의식)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습니다(민 28:26~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예물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 12:44) 칭찬하셨지요.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하겠습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혹여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그 사랑 하나만으로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일용한 양식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며, 잘 먹고 잘 잘 수 있는 건강이 있음도 또한 보고 듣고 걸으며 호흡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며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때로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만난다 해도 진정 감사함으로 받으면 자신을 발견하고 영으로 변화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베푸신 크신 사랑과 축복 그리고 천국 소망 가운데 성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신 은혜에 풍성한 감사와 기쁨의 향을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1.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므로 ( )이라고도 하며, 동일한 기간을 날 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 )이라 불리기도 한다.
2.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살전 5:16~18)
3. 여러분은 맥추절을 어떠한 정성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신지요?
( )
●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도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麥秋節)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지요.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밀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됩니다. 맥추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지요.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출 34:22).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은 7주가 지난 다음 날이 50일째가 되므로 붙여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 역사가 나타났으므로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으며, 후반기 첫 주일에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에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또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특별히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레 23:17) 드렸습니다. 이와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렸지요.
여기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심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어서 드림: 민 28:5~6)와 전제(제사 방법 중 하나로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붓는 의식)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습니다(민 28:26~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예물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 12:44) 칭찬하셨지요.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하겠습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혹여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그 사랑 하나만으로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일용한 양식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며, 잘 먹고 잘 잘 수 있는 건강이 있음도 또한 보고 듣고 걸으며 호흡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며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때로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만난다 해도 진정 감사함으로 받으면 자신을 발견하고 영으로 변화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베푸신 크신 사랑과 축복 그리고 천국 소망 가운데 성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신 은혜에 풍성한 감사와 기쁨의 향을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1.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므로 ( )이라고도 하며, 동일한 기간을 날 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 )이라 불리기도 한다.
2.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살전 5:16~18)
3. 여러분은 맥추절을 어떠한 정성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신지요?
( )
●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도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2014-06-27
제26과율법을 행하는 자
롬 2:13
읽을말씀 : 롬 2:13 | 외울말씀 : 약 2:22 ㅣ 참고 말씀:요일 1:5~7, 마 7:21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심비에 새기고 지켜 행함으로 진정한 의인이 되어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흘려버린다면 자신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식적으로 쌓아 놓기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으로 마치 행하는 것처럼 속아 넘어가고, 말씀대로 행치 않는 사람을 보면 판단 정죄할 수 있기에 항상 주의해야 하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 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 사람마다 다른 마음 중심
자녀를 낳아 길러 보면 부모를 닮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 걸음걸이, 습관까지 비슷한 경우도 있지요. 부모가 성격이 급하고 난폭하며 시기 질투가 강하면 자녀에게서도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타고난 성격은 사람마다 다르며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변화되려면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죄의 속성을 온전히 버려야 합니다.
조선 시대 폭군 연산군의 어머니는 지나치게 질투심이 강했습니다. 그 영향을 받 아 연산군도 시기심이 많고 포악할 뿐 아니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왕족으로 태어나 훌륭한 스승의 교육을 받았지 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에다 악을 쌓아가니 마음 중심이 악해져 갔지요.
사람의 마음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과 자신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느 낀 것들을 통해 형성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이 굳혀진 것이 중심이지요. 사람은 마 음 중심에 따라 선을 추구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비록 태어날 때 좋지 않은 기 질을 물려받았어도 변화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온전케 하시 는 주님을 만나 성결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말씀대로 행하 면, 결국에는 좋은 중심이 만들어지게 되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이방 나라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서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으로 금하신 가증한 음식은 먹지 않았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결코 우상에 절하지 않는 곧은 신앙을 가졌지요.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니 이방 나라에서도 중책을 맡으며 하 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진정한 의인
어떤 사람은“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버리고 의인이 되어야 할 것을 무수히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죄를 다 벗어 버리고 마음 중심을 온전히 진리로 일구어야 참된 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연단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이러한 연단을 통과해야 값진열매로 나올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원래 자기 의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민족 히브리사람을애굽 사람이치는 것을 보고 주위에사람이없는 틈을 타서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에 감추었지요. 그 후 40년의 연단을 통해 철저히 자기 의가 깨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그릇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악한 백성 을 대신하여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져도 좋으니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할 정도로 온유하고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지요(출 32:32).
이처럼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악을 빼냄으로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즉 율법을 들어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진정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려면 다음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째는 진리의 말씀을 앎으로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즉 ‘기도하라’ 했으니 기도하고‘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했으니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어 행하는 단계입니다. 곧 온전한 행함의 단계이지요.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쁨으로 할 때 온전한 행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온전한 행함에 따르는 축복
우리가 온전한 행함의 단계로 들어가려면 먼저는 하나님 말씀에‘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않고,‘버리라’ 하신 것은 버려야 합니다. 즉“미워하지 말라, 시기 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죄를 버리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대로 하지 않고 버리면 옥토 같은 마음이 됩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즉‘하라, 지키라’는 말씀대로 열심히 행하면 믿음이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즉“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법의 제재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 없으므 로 시험 환난과 질병이 떠나며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와 천군 천사로 지켜 주시니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혹여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율법을 지켰다 할지 라도 마음의 악이 버려지는 만큼 차츰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영혼 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며,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 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하셨습 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면 스스로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 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 구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있지요. 질병이나 가 정의 화목, 가정 복음화를 비롯한 그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4.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
야고보서 2장 22절에“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 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참으로 믿는다면 행함이 따르고 행 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어 무엇이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똑같이 듣는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 까요? 각 사람의 마음 중심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얼마나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 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거짓말하 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니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 을 믿는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만 다니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 이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의인이기 때문입니다(롬 2:13).
성경을 보면“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했는가 하면,“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했습니다. 이 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짝을 이루어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깨 달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은 당연히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에 믿고 행하면서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이요, 구원 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율법을 온전히 행하는 자가 되어 구원은 물론 세 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의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어 보세요.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 )을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 )을 빼냄으로 마음의 ( )를 이 루어야 합니다. 즉 ( )을 들어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진정한 ( )이 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똑같이 듣는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로마서 2장 13절 말씀을 다 함께 외워 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03~11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네 가지 마음밭’(마태복음 13장)
1. ‘길가밭’- 단단히 굳은 밭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마음밭을 말한다.
2. ‘돌밭’- 돌멩이가 있어 싹이 나도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을 말한다.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 환난이 오면 넘어지는 사람의 마음밭이다.
3. ‘가시떨기밭’- 가시떨기로 인해 싹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한다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밭을 말한다.
4. ‘좋은 밭’-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를 거두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기에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의 마음밭을 말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심비에 새기고 지켜 행함으로 진정한 의인이 되어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흘려버린다면 자신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식적으로 쌓아 놓기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으로 마치 행하는 것처럼 속아 넘어가고, 말씀대로 행치 않는 사람을 보면 판단 정죄할 수 있기에 항상 주의해야 하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 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 사람마다 다른 마음 중심
자녀를 낳아 길러 보면 부모를 닮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 걸음걸이, 습관까지 비슷한 경우도 있지요. 부모가 성격이 급하고 난폭하며 시기 질투가 강하면 자녀에게서도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타고난 성격은 사람마다 다르며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변화되려면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죄의 속성을 온전히 버려야 합니다.
조선 시대 폭군 연산군의 어머니는 지나치게 질투심이 강했습니다. 그 영향을 받 아 연산군도 시기심이 많고 포악할 뿐 아니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왕족으로 태어나 훌륭한 스승의 교육을 받았지 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에다 악을 쌓아가니 마음 중심이 악해져 갔지요.
사람의 마음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과 자신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느 낀 것들을 통해 형성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이 굳혀진 것이 중심이지요. 사람은 마 음 중심에 따라 선을 추구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비록 태어날 때 좋지 않은 기 질을 물려받았어도 변화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온전케 하시 는 주님을 만나 성결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말씀대로 행하 면, 결국에는 좋은 중심이 만들어지게 되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이방 나라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서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으로 금하신 가증한 음식은 먹지 않았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결코 우상에 절하지 않는 곧은 신앙을 가졌지요.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니 이방 나라에서도 중책을 맡으며 하 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진정한 의인
어떤 사람은“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버리고 의인이 되어야 할 것을 무수히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죄를 다 벗어 버리고 마음 중심을 온전히 진리로 일구어야 참된 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연단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이러한 연단을 통과해야 값진열매로 나올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원래 자기 의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민족 히브리사람을애굽 사람이치는 것을 보고 주위에사람이없는 틈을 타서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에 감추었지요. 그 후 40년의 연단을 통해 철저히 자기 의가 깨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그릇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악한 백성 을 대신하여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져도 좋으니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할 정도로 온유하고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지요(출 32:32).
이처럼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악을 빼냄으로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즉 율법을 들어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진정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려면 다음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째는 진리의 말씀을 앎으로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즉 ‘기도하라’ 했으니 기도하고‘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했으니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어 행하는 단계입니다. 곧 온전한 행함의 단계이지요.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쁨으로 할 때 온전한 행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온전한 행함에 따르는 축복
우리가 온전한 행함의 단계로 들어가려면 먼저는 하나님 말씀에‘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않고,‘버리라’ 하신 것은 버려야 합니다. 즉“미워하지 말라, 시기 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죄를 버리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대로 하지 않고 버리면 옥토 같은 마음이 됩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즉‘하라, 지키라’는 말씀대로 열심히 행하면 믿음이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즉“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법의 제재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 없으므 로 시험 환난과 질병이 떠나며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와 천군 천사로 지켜 주시니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혹여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율법을 지켰다 할지 라도 마음의 악이 버려지는 만큼 차츰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영혼 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며,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 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하셨습 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면 스스로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 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 구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있지요. 질병이나 가 정의 화목, 가정 복음화를 비롯한 그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4.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
야고보서 2장 22절에“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 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참으로 믿는다면 행함이 따르고 행 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어 무엇이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똑같이 듣는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 까요? 각 사람의 마음 중심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얼마나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 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거짓말하 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니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 을 믿는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만 다니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 이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의인이기 때문입니다(롬 2:13).
성경을 보면“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했는가 하면,“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했습니다. 이 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짝을 이루어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깨 달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은 당연히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에 믿고 행하면서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이요, 구원 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율법을 온전히 행하는 자가 되어 구원은 물론 세 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의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어 보세요.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 )을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 )을 빼냄으로 마음의 ( )를 이 루어야 합니다. 즉 ( )을 들어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진정한 ( )이 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똑같이 듣는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로마서 2장 13절 말씀을 다 함께 외워 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03~11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네 가지 마음밭’(마태복음 13장)
1. ‘길가밭’- 단단히 굳은 밭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마음밭을 말한다.
2. ‘돌밭’- 돌멩이가 있어 싹이 나도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을 말한다.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 환난이 오면 넘어지는 사람의 마음밭이다.
3. ‘가시떨기밭’- 가시떨기로 인해 싹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한다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밭을 말한다.
4. ‘좋은 밭’-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를 거두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기에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의 마음밭을 말한다.
2014-06-20
제25과욥의 행사
욥 1:1~5
읽을말씀 : 욥 1:1~5 | 외울말씀 : 욥 23:10 ㅣ 참고 말씀: 욥 29:8~17, 31:16~32
교육목표 : 욥처럼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 본성 속의 악을 발견하여 벗어 버림으로 영육 간에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버린 줄 알았는데 마음에 고통을 받다 보니 순간 혈기가 나와 놀라기도 합니다. 믿음의 형제가 사랑받고 크게 축복받는 것을 보자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마음을 발견하여 회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자신은 그런 악이 없는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좋고 선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연단을 허락하셔서 본성 속에 숨겨진 비진리를 발견케 하십니다. 욥도 연단받기 전에는 스스로 악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극심한 연단을 통해 본성 속의 악을 발견하였습니다. 결국 그것을 버림으로 갑절의 축복을 받는 의인이 되었지요.
1. 동방에서 가장 큰 자인 욥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욥 1:3)라 할 만큼 재물이 많았습니다. 양이 칠천 마리, 약대(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 오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겨리는 두 마리를 의미하니 소만 해도 천 마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양과 낙타는 그보다 몇 곱절 많았으니 참으로 많은 재산을 가진 거부였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욥의 어떤 면을 보고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하셨을까요? ‘큰 자’란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 재물이 많고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 혹은 지식이 많으며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하거나 사랑과 덕이 많아 존경받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존경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큰 자는 단지 눈에 드러난 업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자로 여길 수 있는 마음씀이나 됨됨이가 좋아서 존경할 만한 기본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말하지요.
마음 됨됨이가 좋은 사람은 시킨 일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많은 것을 포용력 있게 잘 감당합니다. 두루 살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얼마나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마음 그릇의 크고 작은 정도에 차이가 납니다. 만일 마음 됨됨이가 부족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더 넓고 큰 마음으로 바꿔 나가면 됩니다. 모든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마음 됨됨이를 좋게 하는 길입니다.
욥을 살펴보면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며 큰 자로서 마음 씀씀이가 고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들과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풍부한 재물을 사람들에게 후히 베풀며 도왔으니 참으로 큰 자라 할 수 있지요.
그 밖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며 행해도 욥만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잔칫날이 지나면 아침에 일어나 아들들을 부르고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시 그들이 잔치 중에 실수하여 죄를 지었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욥을 하나님은 순전하다 여기셨습니다. 더구나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 곧 모든 자녀와 재산을 다 거두어 가셨어도 감사하였습니다.
2. 연단을 통해 온전한 의인이 된 욥
욥은 자녀와 재물을 다 잃는 엄청난 일을 당했어도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계속하여 시험 환난이 다가왔습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심해 스스로 재 가운데 앉아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는 비참한 모습으로 변했지요. 그의 아내는 위로는커녕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비웃으며 저주하지만 욥은 입술로도 범죄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순전한 욥도 통과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는 의롭고 진실했으며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런 고통을 주고 멸시받게 하시는가?” 했지요. 하나님이 욥에게 진정 원하셨던 것은 변함없이 진실하며 악이 없는 온전한 마음이었습니다. 정녕 욥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지,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지 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도 감사했지만 시련이 계속되자 마침내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자 깊이 감춰진 악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욥은 태어났을 때의 자연 환경을 원망하고 낳아 준 부모를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욥 27:2)라며 하나님까지 원망하지요. 결국 자기는 의인이고 하나님은 의롭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좋은 중심을 가졌고 거기에 한 가지만 더하면 당대 의인 중에 의인이 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을 아셨습니다. 행함으로는 누구보다 온전했던 그가 마음 깊이 있는 악의 모양까지도 발견하여 벗어 버리면 진정한 의인으로 나올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고 그것을 통해 성결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끄셨지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참된 의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욥과 같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시험을 주시면 어떡하나?”라고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그런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음 그릇을 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시지요(고전 10:13). 욥은 능히 시험을 감당할 줄 아시기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결국 욥은 자신도 몰랐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악을 발견하여 버리고 참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통과하여 좋은 그릇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3. 진실한 사람을 찾아 축복하시는 하나님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진실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존귀한 사람으로 높이시고 영화로운 관을 씌워 주시지요. 욥처럼 의로운 사람이 되어 자기의 행사를 돌아보아 항상 하나님 앞에 흠과 티가 없이 깨끗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사란 ‘습관을 좇아 행하는 행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걷든지 무엇을 계획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의인을 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욥처럼 어려운 일에 부딪혔다면 끝까지 하나님 앞에 원망하지 않고 의롭게 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감사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을 갖기 원하시지요. 이러한 의인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욥에게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욥은 악의 모양까지도 벗어 버린 온전한 의인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깊은 영적 단계로 들어가 예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갑절의 축복을 받으면 얼마 되지 않지만, 재벌 총수가 갑절의 축복을 받는다면 어마어마하지요. 연단을 받기 전에도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거부였으니 그것의 갑절이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당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만일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편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내 마음 안에 불평, 원망, 탄식, 슬픔, 염려 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악의 모양이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의인이 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오고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흠도 티도 없는 영의 마음으로 기도하니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놀라운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인으로 변화시키고자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 신속히 합당한 중심이 되어 마음껏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순전하고 정직한 욥이 연단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
2. 욥이 연단받기 전의 소유와 연단이 끝난 후 받은 축복에 대해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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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1:3, 42:12~16)
3. 만일 자신에게 욥과 같은 시험이 온다면 진정한 의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라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85~9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순전’과 ‘정직’의 영적인 의미
순전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완전함’이며, 영적 의미는 ‘행함으로 온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직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음’이며 영적 의미는 ‘타인을 속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자기 자신과 약속한 것일지라도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다.
교육목표 : 욥처럼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 본성 속의 악을 발견하여 벗어 버림으로 영육 간에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버린 줄 알았는데 마음에 고통을 받다 보니 순간 혈기가 나와 놀라기도 합니다. 믿음의 형제가 사랑받고 크게 축복받는 것을 보자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마음을 발견하여 회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자신은 그런 악이 없는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좋고 선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연단을 허락하셔서 본성 속에 숨겨진 비진리를 발견케 하십니다. 욥도 연단받기 전에는 스스로 악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극심한 연단을 통해 본성 속의 악을 발견하였습니다. 결국 그것을 버림으로 갑절의 축복을 받는 의인이 되었지요.
1. 동방에서 가장 큰 자인 욥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욥 1:3)라 할 만큼 재물이 많았습니다. 양이 칠천 마리, 약대(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 오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겨리는 두 마리를 의미하니 소만 해도 천 마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양과 낙타는 그보다 몇 곱절 많았으니 참으로 많은 재산을 가진 거부였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욥의 어떤 면을 보고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하셨을까요? ‘큰 자’란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 재물이 많고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 혹은 지식이 많으며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하거나 사랑과 덕이 많아 존경받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존경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큰 자는 단지 눈에 드러난 업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자로 여길 수 있는 마음씀이나 됨됨이가 좋아서 존경할 만한 기본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말하지요.
마음 됨됨이가 좋은 사람은 시킨 일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많은 것을 포용력 있게 잘 감당합니다. 두루 살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얼마나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마음 그릇의 크고 작은 정도에 차이가 납니다. 만일 마음 됨됨이가 부족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더 넓고 큰 마음으로 바꿔 나가면 됩니다. 모든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마음 됨됨이를 좋게 하는 길입니다.
욥을 살펴보면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며 큰 자로서 마음 씀씀이가 고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들과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풍부한 재물을 사람들에게 후히 베풀며 도왔으니 참으로 큰 자라 할 수 있지요.
그 밖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며 행해도 욥만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잔칫날이 지나면 아침에 일어나 아들들을 부르고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시 그들이 잔치 중에 실수하여 죄를 지었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욥을 하나님은 순전하다 여기셨습니다. 더구나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 곧 모든 자녀와 재산을 다 거두어 가셨어도 감사하였습니다.
2. 연단을 통해 온전한 의인이 된 욥
욥은 자녀와 재물을 다 잃는 엄청난 일을 당했어도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계속하여 시험 환난이 다가왔습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심해 스스로 재 가운데 앉아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는 비참한 모습으로 변했지요. 그의 아내는 위로는커녕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비웃으며 저주하지만 욥은 입술로도 범죄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순전한 욥도 통과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는 의롭고 진실했으며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런 고통을 주고 멸시받게 하시는가?” 했지요. 하나님이 욥에게 진정 원하셨던 것은 변함없이 진실하며 악이 없는 온전한 마음이었습니다. 정녕 욥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지,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지 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도 감사했지만 시련이 계속되자 마침내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자 깊이 감춰진 악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욥은 태어났을 때의 자연 환경을 원망하고 낳아 준 부모를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욥 27:2)라며 하나님까지 원망하지요. 결국 자기는 의인이고 하나님은 의롭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좋은 중심을 가졌고 거기에 한 가지만 더하면 당대 의인 중에 의인이 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을 아셨습니다. 행함으로는 누구보다 온전했던 그가 마음 깊이 있는 악의 모양까지도 발견하여 벗어 버리면 진정한 의인으로 나올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고 그것을 통해 성결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끄셨지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참된 의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욥과 같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시험을 주시면 어떡하나?”라고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그런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음 그릇을 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시지요(고전 10:13). 욥은 능히 시험을 감당할 줄 아시기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결국 욥은 자신도 몰랐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악을 발견하여 버리고 참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통과하여 좋은 그릇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3. 진실한 사람을 찾아 축복하시는 하나님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진실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존귀한 사람으로 높이시고 영화로운 관을 씌워 주시지요. 욥처럼 의로운 사람이 되어 자기의 행사를 돌아보아 항상 하나님 앞에 흠과 티가 없이 깨끗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사란 ‘습관을 좇아 행하는 행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걷든지 무엇을 계획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의인을 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욥처럼 어려운 일에 부딪혔다면 끝까지 하나님 앞에 원망하지 않고 의롭게 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감사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을 갖기 원하시지요. 이러한 의인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욥에게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욥은 악의 모양까지도 벗어 버린 온전한 의인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깊은 영적 단계로 들어가 예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갑절의 축복을 받으면 얼마 되지 않지만, 재벌 총수가 갑절의 축복을 받는다면 어마어마하지요. 연단을 받기 전에도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거부였으니 그것의 갑절이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당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만일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편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내 마음 안에 불평, 원망, 탄식, 슬픔, 염려 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악의 모양이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의인이 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오고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흠도 티도 없는 영의 마음으로 기도하니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놀라운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인으로 변화시키고자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 신속히 합당한 중심이 되어 마음껏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순전하고 정직한 욥이 연단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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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욥이 연단받기 전의 소유와 연단이 끝난 후 받은 축복에 대해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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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1:3, 42:12~16)
3. 만일 자신에게 욥과 같은 시험이 온다면 진정한 의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라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85~9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순전’과 ‘정직’의 영적인 의미
순전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완전함’이며, 영적 의미는 ‘행함으로 온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직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음’이며 영적 의미는 ‘타인을 속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자기 자신과 약속한 것일지라도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다.
2014-06-13
제24과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마 5:10~12
읽을말씀 : 마 5:10~12 | 외울말씀 : 마 5:10 ㅣ 참고 말씀:딤후 3:12
교육목표 :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승리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핍박이란 ‘상대를 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인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핍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핍박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더 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신앙이 나태해지고 미지근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역사를 보아도 믿음의 선진들이 의를 위해 핍박받고 순교할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기까지
로마제국 당시 수많은 성도가 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원형극장에서 사자밥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덤벼들어도 믿음 있는 성도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며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로마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찬송하며 죽어 갈까?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기에 죽음도 불사하고 믿음을 지키는가?’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차츰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로마 황제의 어머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이처럼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는 피 흘림이 있었기에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전 세계에 신속하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천국에서 큰 상으로 갚아 주시며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2.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경우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적당히 신앙생활하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고 주일을 지키고자 하니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핍박을 통해 자신의 신앙이 점검되고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에 진리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하면서 어떠한 경우에 핍박을 받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일을 이루어 갈 때 시기 질투로 인해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누가 잘되는 것을 보면 시기가 일어나 왜곡하여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거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정말 그런가?’ 하며 동조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지요.
예전에 우리 교회도 크게 부흥하니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훼방하였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교회를 몹시 핍박했지만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지요. 끝까지 의를 지키고 선 가운데 행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선한 방법으로 해결하시며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니 믿음의 형제끼리 시기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미워하고 감정을 품는 것은 자신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마음에 평안이 임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락하신 핍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가령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시기도 하지요. 핍박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꾀를 동원하여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정도를 좇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선한 지혜를 주시므로 세상의 악한 지혜를 이기고 오히려 더 크게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가 하면 큰그릇을 만들어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의 시기 질투로 인해 곳곳으로 고달프게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울 왕을 피해 다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큰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지요.
이 외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외에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곳곳으로 피해 흩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파된 것을 볼 수 있지요.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루며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에 따라 허락하신 핍박을 잘 받으면 더 훌륭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크게 펼치는 것을 봅니다.
셋째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식사 준비도 적당히 한다면 가족들이 싫어할 것입니다. 또 직장에 다니면서 교회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회사일은 소홀히 한다면 직장 상사나 동료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다니면서도 덕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질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받지 않아도 될 핍박을 자초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러냐?” 하며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여 핍박받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3. 핍박을 이기고 축복을 받으려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을 받는 사람은 왜 핍박을 받는지 깨우쳐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잘못으로 핍박이 왔다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다음에는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핍박을 받아 불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로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끝까지 선으로 대할 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악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일을 이루는 과정에 이런저런 분야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진리 가운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신을 심히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기도하며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라도 사랑하고 용서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지요(눅 23:34). 우리도 선 가운데 용서하며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기 감정에 치우쳐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핍박 받는 일이 없도록 자기의 본분을 다하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핍박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통과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승리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핍박이란 ‘상대를 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인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핍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핍박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더 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신앙이 나태해지고 미지근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역사를 보아도 믿음의 선진들이 의를 위해 핍박받고 순교할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기까지
로마제국 당시 수많은 성도가 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원형극장에서 사자밥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덤벼들어도 믿음 있는 성도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며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로마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찬송하며 죽어 갈까?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기에 죽음도 불사하고 믿음을 지키는가?’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차츰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로마 황제의 어머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이처럼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는 피 흘림이 있었기에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전 세계에 신속하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천국에서 큰 상으로 갚아 주시며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2.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경우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적당히 신앙생활하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고 주일을 지키고자 하니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핍박을 통해 자신의 신앙이 점검되고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에 진리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하면서 어떠한 경우에 핍박을 받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일을 이루어 갈 때 시기 질투로 인해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누가 잘되는 것을 보면 시기가 일어나 왜곡하여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거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정말 그런가?’ 하며 동조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지요.
예전에 우리 교회도 크게 부흥하니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훼방하였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교회를 몹시 핍박했지만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지요. 끝까지 의를 지키고 선 가운데 행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선한 방법으로 해결하시며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니 믿음의 형제끼리 시기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미워하고 감정을 품는 것은 자신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마음에 평안이 임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락하신 핍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가령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시기도 하지요. 핍박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꾀를 동원하여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정도를 좇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선한 지혜를 주시므로 세상의 악한 지혜를 이기고 오히려 더 크게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가 하면 큰그릇을 만들어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의 시기 질투로 인해 곳곳으로 고달프게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울 왕을 피해 다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큰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지요.
이 외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외에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곳곳으로 피해 흩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파된 것을 볼 수 있지요.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루며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에 따라 허락하신 핍박을 잘 받으면 더 훌륭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크게 펼치는 것을 봅니다.
셋째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식사 준비도 적당히 한다면 가족들이 싫어할 것입니다. 또 직장에 다니면서 교회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회사일은 소홀히 한다면 직장 상사나 동료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다니면서도 덕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질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받지 않아도 될 핍박을 자초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러냐?” 하며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여 핍박받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3. 핍박을 이기고 축복을 받으려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을 받는 사람은 왜 핍박을 받는지 깨우쳐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잘못으로 핍박이 왔다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다음에는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핍박을 받아 불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로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끝까지 선으로 대할 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악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일을 이루는 과정에 이런저런 분야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진리 가운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신을 심히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기도하며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라도 사랑하고 용서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지요(눅 23:34). 우리도 선 가운데 용서하며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기 감정에 치우쳐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핍박 받는 일이 없도록 자기의 본분을 다하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핍박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통과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14-06-06
제23과당세에 완전한 자
창 6:5~12
읽을말씀 : 창 6:5~12 | 외울말씀 : 창 6:5 l 참고 말씀:벧전 2:1~2
교육목표 : 의인 노아처럼 믿음으로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게 한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좋을 대로 살며 우상을 숭배하며 방탕한 삶으로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렸지요.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과연 의인 노아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요?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말씀합니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였고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패괴하다는 것은 부수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요.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지요.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노아 때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의인으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도 의인이어서 심판을 면했던 것일까요? 노아처럼 온전해서가 아니라 의인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갔다면 그들도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했기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일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해 보일 수 있으나 진실하게 법을 준수하고 정직하게 살며 모든 삶에 성실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잠시잠깐 이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방탕하게 살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였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내 몸과 같이, 남편을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며, 주 안에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자녀로서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면 결국 노아같이 당세에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노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여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설령 어려움을 당했다 해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피할 길을 열어 주시지요.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성경에는 의로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원과 축복을 받은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범사에 형통하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형통했지요. 오히려 합력해 선을 이룸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큰 지진을 일으켜 감옥 문을 여시고 착고도 풀어 주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가족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을 보여 주고 성령의 역사로 서로 만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도록 축복해 주셨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의로운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날도 노아 시대처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포하고 패괴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 모든 계획이 얼마나 악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과 다름 없는 행동을 합니다. 결코 지어서는 안 될 죄들을 짓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만들지요.
세상 풍조를 버리지 않으면 악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믿음의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리신 것도 죄인 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죄악이 가득 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우리는 의인이 되어 구원은 물론 영원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첫째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귀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선에 속하려면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생명이 되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고 결국에는 무로 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나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온전하신 것처럼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거룩하고 온전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온전하면 하나님 성품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맺히지요. 성령의 열매가 맺힌 정도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어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둘째,( )
셋째,( )
2. 노아 때 홍수 심판을 면한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 )
3. 노아는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짓는 자신을 조롱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며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금번 전도대회를 맞이하여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눈물 뿌려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는지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65~7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노아의 방주 (창세기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50미터, 폭 25미터, 높이 15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부터 4,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에덴동산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1년 이상 방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의인 노아처럼 믿음으로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게 한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좋을 대로 살며 우상을 숭배하며 방탕한 삶으로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렸지요.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과연 의인 노아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요?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말씀합니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였고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패괴하다는 것은 부수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요.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지요.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노아 때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의인으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도 의인이어서 심판을 면했던 것일까요? 노아처럼 온전해서가 아니라 의인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갔다면 그들도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했기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일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해 보일 수 있으나 진실하게 법을 준수하고 정직하게 살며 모든 삶에 성실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잠시잠깐 이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방탕하게 살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였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내 몸과 같이, 남편을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며, 주 안에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자녀로서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면 결국 노아같이 당세에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노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여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설령 어려움을 당했다 해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피할 길을 열어 주시지요.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성경에는 의로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원과 축복을 받은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범사에 형통하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형통했지요. 오히려 합력해 선을 이룸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큰 지진을 일으켜 감옥 문을 여시고 착고도 풀어 주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가족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을 보여 주고 성령의 역사로 서로 만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도록 축복해 주셨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의로운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날도 노아 시대처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포하고 패괴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 모든 계획이 얼마나 악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과 다름 없는 행동을 합니다. 결코 지어서는 안 될 죄들을 짓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만들지요.
세상 풍조를 버리지 않으면 악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믿음의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리신 것도 죄인 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죄악이 가득 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우리는 의인이 되어 구원은 물론 영원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첫째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귀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선에 속하려면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생명이 되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고 결국에는 무로 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나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온전하신 것처럼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거룩하고 온전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온전하면 하나님 성품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맺히지요. 성령의 열매가 맺힌 정도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어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둘째,( )
셋째,( )
2. 노아 때 홍수 심판을 면한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 )
3. 노아는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짓는 자신을 조롱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며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금번 전도대회를 맞이하여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눈물 뿌려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는지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65~7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노아의 방주 (창세기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50미터, 폭 25미터, 높이 15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부터 4,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에덴동산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1년 이상 방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2014-05-30
제22과요동하지 말라
삿 9:7~15
읽을말씀 : 삿 9:7~15 | 외울말씀 : 잠언 4:27 ㅣ 참고 말씀:엡 6:5~7
교육목표 : 오직 믿음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기 분수와 위치를 지키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단맛이 있어서 다른 한약재와 달리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단맛이 비위를 돕고 다른 약재의 작용을 부드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초라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감초는 체내에 염분과 수분을 축적시켜서 고혈압이나 심장병에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이처럼 흔히 사용하는 한약재 중에도 들어가야 할 곳과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이 있습니다. 들어가야 할 곳에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요동하지 않은 나무들과 가시나무의 비유
사사기 9장에는 기드온의 아들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왜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의 비유를 들어 외치고 있는지 먼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미디안 족속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3백 명의 군사로 수많은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쳐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합니다.
기드온은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며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은 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욕심으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 사람들을 회유하여 자금을 마련한 후 그 돈으로 불량한 사람들을 모아 아버지의 아들들, 곧 자신의 이복형제 칠십 명을 한꺼번에 몰살하였습니다. 다행히 막내아들 요담만 몰래 숨어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등에 업고 왕이 되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꼭대기로 올라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가시나무를 비유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나무들이 그들의 왕을 뽑으려고 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요동하지 않고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였지만, 아무 쓸모없는 가시나무만 자기 분수도 모른 채 교만하여 왕이 되고자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곧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백성의 요청에도 왕위를 탐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악한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을 비유한 것이지요. 물론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이 임하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은 도리어 아비멜렉의 손에 진멸되었고, 아비멜렉 역시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데 이에서 벗어나니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2. 각자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일과 도리가 있습니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길을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나이 어린 사람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등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길을 갈 때 도리를 좇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고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또한 주의 종으로서 도리가 있고, 양 떼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의 종이라면 성도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히 진리 안에 살도록 깨우쳐 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범사에 천국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양 떼 편에서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변화되어 의롭고 정결한 사람이 되며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 도리이지요.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진리 안에서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 역시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섬기며 가정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해야 하지요.
상하 관계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도리일까요? 에베소서 6장 5~7절을 보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윗사람의 도리도 알려 주셨지요.
골로새서 4장 1절에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도리가 있으며 참된 의인이 되려면 자신의 도리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각자 위치에서 다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줄 알아 서로 소중히 여기며 결코 상대를 힘들게 하거나 미워하며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고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본분을 소중히 여길뿐더러 서로 귀히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것이 좋으니 나는 저것을 하리라.” 하고 자기 일을 그만 둔다면 어찌 하나님 앞에 합당하겠습니까.
앞서 언급한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왕이 되는 것을 마다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했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라는 요청에 쉽게 요동하였지요.
이처럼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알고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분야가 소중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각자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감당했느냐에 따라 행한 대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요동하는 가시나무의 교훈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요동하지 않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신앙생활을 하면서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곧장 그 길을 가므로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습관을 좇아 기도함으로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지요.
사랑함에 있어서도 요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끝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며, 그 사랑이 더욱 승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 믿음의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사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변함 없어야 합니다.
이 외에 충성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복된 삶을 살게 해 준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흐뭇해하시겠습니까? 그러니 마음과 뜻을 다해 충성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말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여 아름다운 열매 맺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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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 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나요? ( )
2.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왜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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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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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혹여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함으로 상대에게 해를 끼치거나 분수에 지나 치게 행동하여 남을 어렵게 하는 일은 없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55~6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기드온’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은 ‘베는 자’, ‘자르는 자’를 뜻하며, 므낫세 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이다. 후에 바알 신상을 훼파하여 ‘ 바알과 다툰다’라는 뜻의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도 타작마당이었다. 기드온은 3만 2천 명 중에서 3백 명을 선발하여 항아리와 횃불을 이용해 미디안 족속을 격파하고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태평을 누리게 했다(삿 8:28).
교육목표 : 오직 믿음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기 분수와 위치를 지키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단맛이 있어서 다른 한약재와 달리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단맛이 비위를 돕고 다른 약재의 작용을 부드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초라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감초는 체내에 염분과 수분을 축적시켜서 고혈압이나 심장병에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이처럼 흔히 사용하는 한약재 중에도 들어가야 할 곳과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이 있습니다. 들어가야 할 곳에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요동하지 않은 나무들과 가시나무의 비유
사사기 9장에는 기드온의 아들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왜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의 비유를 들어 외치고 있는지 먼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미디안 족속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3백 명의 군사로 수많은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쳐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합니다.
기드온은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며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은 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욕심으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 사람들을 회유하여 자금을 마련한 후 그 돈으로 불량한 사람들을 모아 아버지의 아들들, 곧 자신의 이복형제 칠십 명을 한꺼번에 몰살하였습니다. 다행히 막내아들 요담만 몰래 숨어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등에 업고 왕이 되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꼭대기로 올라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가시나무를 비유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나무들이 그들의 왕을 뽑으려고 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요동하지 않고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였지만, 아무 쓸모없는 가시나무만 자기 분수도 모른 채 교만하여 왕이 되고자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곧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백성의 요청에도 왕위를 탐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악한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을 비유한 것이지요. 물론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이 임하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은 도리어 아비멜렉의 손에 진멸되었고, 아비멜렉 역시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데 이에서 벗어나니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2. 각자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일과 도리가 있습니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길을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나이 어린 사람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등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길을 갈 때 도리를 좇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고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또한 주의 종으로서 도리가 있고, 양 떼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의 종이라면 성도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히 진리 안에 살도록 깨우쳐 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범사에 천국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양 떼 편에서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변화되어 의롭고 정결한 사람이 되며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 도리이지요.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진리 안에서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 역시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섬기며 가정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해야 하지요.
상하 관계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도리일까요? 에베소서 6장 5~7절을 보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윗사람의 도리도 알려 주셨지요.
골로새서 4장 1절에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도리가 있으며 참된 의인이 되려면 자신의 도리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각자 위치에서 다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줄 알아 서로 소중히 여기며 결코 상대를 힘들게 하거나 미워하며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고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본분을 소중히 여길뿐더러 서로 귀히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것이 좋으니 나는 저것을 하리라.” 하고 자기 일을 그만 둔다면 어찌 하나님 앞에 합당하겠습니까.
앞서 언급한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왕이 되는 것을 마다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했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라는 요청에 쉽게 요동하였지요.
이처럼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알고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분야가 소중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각자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감당했느냐에 따라 행한 대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요동하는 가시나무의 교훈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요동하지 않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신앙생활을 하면서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곧장 그 길을 가므로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습관을 좇아 기도함으로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지요.
사랑함에 있어서도 요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끝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며, 그 사랑이 더욱 승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 믿음의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사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변함 없어야 합니다.
이 외에 충성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복된 삶을 살게 해 준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흐뭇해하시겠습니까? 그러니 마음과 뜻을 다해 충성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말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여 아름다운 열매 맺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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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 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나요? ( )
2.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왜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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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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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혹여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함으로 상대에게 해를 끼치거나 분수에 지나 치게 행동하여 남을 어렵게 하는 일은 없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55~6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기드온’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은 ‘베는 자’, ‘자르는 자’를 뜻하며, 므낫세 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이다. 후에 바알 신상을 훼파하여 ‘ 바알과 다툰다’라는 뜻의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도 타작마당이었다. 기드온은 3만 2천 명 중에서 3백 명을 선발하여 항아리와 횃불을 이용해 미디안 족속을 격파하고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태평을 누리게 했다(삿 8:28).
2014-05-23
제21과순 종
삼상 15:22~23
읽을말씀 : 삼상 15:22~23 | 외울말씀 : 삼상 15:22 ㅣ 참고 말씀:롬 10:10, 8:7~8
교육목표 :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참된 의인은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이 되기 위한 관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는데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이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의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마음을 할례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은 버리고 하지 않으며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을 지켜 행하니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의에 이르는 것이지요. 즉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 입술로 시인할 때 그것이 참이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며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는 만큼 의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으로 믿어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질수록 참된 의인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2. 질서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 축복
세상에는 주종 관계나 조직 사회와 같이 순종이 잘 이루어져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질서 안에서 얼마나 순종이 잘 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부모는 자녀를 주 안에서 올바르고 지혜롭게 잘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고, 자녀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여 빗나가지 않아야 하지요. 만일 자녀가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고 늘 사고만 친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 가정은 불행과 슬픔,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회에서도 귀히 쓰임을 받는다면 부모는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입니다.
사제지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운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잘 순종하며,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직원을 좋아하지요.
이처럼 질서를 좇아 순종할 때 모든 것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이 좋아하는 비진리를 좇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였을 때,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기쁘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이 무척 사랑스러우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반면 사울 왕처럼 불순종을 거듭하여 하나님께 싫어버린 바 된 사람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그는 자기 생각 가운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도 불순종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고, 기름진 양과 소는 남기고 가치 없고 천한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 왕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아 왕위가 다윗에게 넘어가고 말지요.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며 사울 왕을 엄히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15:22~23).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지요.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즉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집안에 큰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 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순종하면 그 뒷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자기 생각이 앞서게 되면 불순종이 나올뿐더러 부부나 가족,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은 하나님 마음을 어찌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지만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므로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지요.
사르밧 과부의 경우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가뭄이 매우 심하여 한 번 먹을 양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으로 자기를 위해 떡 한 조각을 만들어 오라고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엘리야의 요청은 보통 사람이 순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가 약속한 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참된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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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여호와께서 ( )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 )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 )이 제사보다 낫고 ( ) 것이 수양의 기름 보다 나으니”(삼상 15:22)
2. 마지막 양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공궤하여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축복받았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 )
3.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모든 소유물을 진멸하라 하셨는데도 불순종하여 아말렉 왕과 보기에 좋은 짐승을 살려서 끌어온 왕은 누구일까요? ( )
4. 야고보서 2장 22절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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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41~5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 번째 :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한다.
두 번째 :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한다.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세 번째 : 무조건 순종한다.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으며 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네 번째 :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한다.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진다.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교육목표 :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참된 의인은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이 되기 위한 관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는데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이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의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마음을 할례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은 버리고 하지 않으며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을 지켜 행하니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의에 이르는 것이지요. 즉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 입술로 시인할 때 그것이 참이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며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는 만큼 의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으로 믿어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질수록 참된 의인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2. 질서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 축복
세상에는 주종 관계나 조직 사회와 같이 순종이 잘 이루어져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질서 안에서 얼마나 순종이 잘 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부모는 자녀를 주 안에서 올바르고 지혜롭게 잘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고, 자녀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여 빗나가지 않아야 하지요. 만일 자녀가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고 늘 사고만 친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 가정은 불행과 슬픔,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회에서도 귀히 쓰임을 받는다면 부모는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입니다.
사제지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운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잘 순종하며,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직원을 좋아하지요.
이처럼 질서를 좇아 순종할 때 모든 것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이 좋아하는 비진리를 좇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였을 때,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기쁘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이 무척 사랑스러우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반면 사울 왕처럼 불순종을 거듭하여 하나님께 싫어버린 바 된 사람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그는 자기 생각 가운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도 불순종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고, 기름진 양과 소는 남기고 가치 없고 천한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 왕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아 왕위가 다윗에게 넘어가고 말지요.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며 사울 왕을 엄히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15:22~23).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지요.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즉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집안에 큰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 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순종하면 그 뒷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자기 생각이 앞서게 되면 불순종이 나올뿐더러 부부나 가족,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은 하나님 마음을 어찌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지만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므로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지요.
사르밧 과부의 경우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가뭄이 매우 심하여 한 번 먹을 양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으로 자기를 위해 떡 한 조각을 만들어 오라고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엘리야의 요청은 보통 사람이 순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가 약속한 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참된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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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여호와께서 ( )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 )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 )이 제사보다 낫고 ( ) 것이 수양의 기름 보다 나으니”(삼상 15:22)
2. 마지막 양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공궤하여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축복받았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 )
3.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모든 소유물을 진멸하라 하셨는데도 불순종하여 아말렉 왕과 보기에 좋은 짐승을 살려서 끌어온 왕은 누구일까요? ( )
4. 야고보서 2장 22절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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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41~5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 번째 :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한다.
두 번째 :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한다.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세 번째 : 무조건 순종한다.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으며 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네 번째 :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한다.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진다.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2014-05-16
제20과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창 22:1~13
읽을말씀 : 창 22:1~13 | 외울말씀 : 히 11:19 l 참고 말씀:에 4:16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현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상대를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눈빛이나 몸짓만 보아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설령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오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불신하는 경우는 친한 것 같아도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쉽게 상하고 결국 갈라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자녀와의 관계도 얼마나 진실함으로 신뢰를 쌓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1. 자신의 생명도 내어줄 수 있는 신뢰 관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무엇을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부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그 일이 악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니 결코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달리 선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도와주며 해결해 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인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유다인으로서 페르시아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사촌 모르드개가 부탁을 합니다. 악한 하만이 자기 민족(유다)을 말살하려고 하니 왕에게 나가 간청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왕 앞에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30일이나 되었고, 누구든지 왕이 부르기 전에 나가면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다시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하며 왕 앞에 나가기를 권면합니다.
이에 에스더는 삼일 금식을 하고 민족을 살리고자 죽을 각오로 왕 앞에 나가 결국 멸절 위기의 민족을 구했습니다. 에스더가 선 가운데 자기 유익이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 주었기에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으며 그 결과도 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부모 없는 에스더를 딸처럼 양육했고, 에스더 역시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신뢰했기에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는 부탁까지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중심을 소유한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더 온전케 하시기 위해 시험을 하십니다. 그 과정을 보면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돈독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십니다.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고 앞으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만 명하시지요. 아브라함은 갈 바를 몰랐지만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어떤 이유도 대지 않고 지시하신 땅으로 떠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보니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의심없이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신 약속이 무색하리만큼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어 이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믿음으로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왔건만 설상가상으로 애굽 왕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했을 법도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애굽 왕에게 큰 재앙을 내려 사라를 즉시 돌려보내고 육축과 노비와 은 천 개를 주며, 아브라함에게 좋은 땅을 골라 거하도록 선처를 베풀게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3.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어드린 아브라함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니 함께한 조카 롯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가축이 어찌나 많았던지 목초지와 물을 얻기 위해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지요. 이에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줍니다. 그 후에도 롯이 포로로 잡혀가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롯을 구해 오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양육한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며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처럼 네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미 자신이나 아내가 나이 많아 자식을 낳을 수 없지만 결코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기뻐하시며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되도록 후사가 생기지 않자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도록 요구한 결과 하갈과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 해에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씨인 이삭을 100세에 얻었습니다. 어느 날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하지요.
이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므로 너무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라의 말대로 하라 하시며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정과 욕심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면 오직 순종했던 것입니다.
4.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명령이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히 11:19).
아브라함은 바로 순종하여 아침 일찍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모든 번제 준비를 마치고 이삭을 결박하여 칼로 내리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다급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는 것이었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이때를 기다리고 대답한 건 아닐까?”라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데 결코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멈추라고 하시지는 않을까?”라는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순종하여 칼로 내리치려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내보임으로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경외함을 온전히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지예정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시험을 통과할지도 다 아셨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시험하신 것은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송사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원수 마귀 사단 앞에서도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아브라함의 신앙이 분명히 증명되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인이 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며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모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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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상관이 없는 것을 고르시오.
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갔다.
②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유다 민족을 구했다.
③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했다.
④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다.
2.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어떠한 마음으로 순종하였을까요? (히브리서 11:19)
( )
3. 사라가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함으로 훗날 큰 풍파를 일으키게 된 일은 무엇이었나요?
( )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33~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의인(義人)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된다. 이처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으면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죄를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현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상대를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눈빛이나 몸짓만 보아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설령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오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불신하는 경우는 친한 것 같아도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쉽게 상하고 결국 갈라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자녀와의 관계도 얼마나 진실함으로 신뢰를 쌓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1. 자신의 생명도 내어줄 수 있는 신뢰 관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무엇을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부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그 일이 악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니 결코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달리 선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도와주며 해결해 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인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유다인으로서 페르시아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사촌 모르드개가 부탁을 합니다. 악한 하만이 자기 민족(유다)을 말살하려고 하니 왕에게 나가 간청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왕 앞에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30일이나 되었고, 누구든지 왕이 부르기 전에 나가면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다시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하며 왕 앞에 나가기를 권면합니다.
이에 에스더는 삼일 금식을 하고 민족을 살리고자 죽을 각오로 왕 앞에 나가 결국 멸절 위기의 민족을 구했습니다. 에스더가 선 가운데 자기 유익이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 주었기에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으며 그 결과도 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부모 없는 에스더를 딸처럼 양육했고, 에스더 역시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신뢰했기에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는 부탁까지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중심을 소유한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더 온전케 하시기 위해 시험을 하십니다. 그 과정을 보면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돈독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십니다.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고 앞으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만 명하시지요. 아브라함은 갈 바를 몰랐지만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어떤 이유도 대지 않고 지시하신 땅으로 떠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보니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의심없이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신 약속이 무색하리만큼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어 이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믿음으로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왔건만 설상가상으로 애굽 왕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했을 법도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애굽 왕에게 큰 재앙을 내려 사라를 즉시 돌려보내고 육축과 노비와 은 천 개를 주며, 아브라함에게 좋은 땅을 골라 거하도록 선처를 베풀게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3.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어드린 아브라함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니 함께한 조카 롯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가축이 어찌나 많았던지 목초지와 물을 얻기 위해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지요. 이에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줍니다. 그 후에도 롯이 포로로 잡혀가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롯을 구해 오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양육한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며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처럼 네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미 자신이나 아내가 나이 많아 자식을 낳을 수 없지만 결코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기뻐하시며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되도록 후사가 생기지 않자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도록 요구한 결과 하갈과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 해에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씨인 이삭을 100세에 얻었습니다. 어느 날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하지요.
이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므로 너무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라의 말대로 하라 하시며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정과 욕심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면 오직 순종했던 것입니다.
4.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명령이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히 11:19).
아브라함은 바로 순종하여 아침 일찍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모든 번제 준비를 마치고 이삭을 결박하여 칼로 내리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다급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는 것이었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이때를 기다리고 대답한 건 아닐까?”라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데 결코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멈추라고 하시지는 않을까?”라는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순종하여 칼로 내리치려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내보임으로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경외함을 온전히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지예정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시험을 통과할지도 다 아셨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시험하신 것은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송사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원수 마귀 사단 앞에서도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아브라함의 신앙이 분명히 증명되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인이 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며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모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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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상관이 없는 것을 고르시오.
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갔다.
②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유다 민족을 구했다.
③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했다.
④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다.
2.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어떠한 마음으로 순종하였을까요? (히브리서 11:19)
( )
3. 사라가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함으로 훗날 큰 풍파를 일으키게 된 일은 무엇이었나요?
( )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33~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의인(義人)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된다. 이처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으면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죄를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